목회일을 하면서 신학과 내가 하고자하는 예술을 어떻게 접목시킬까 늘 고민했다. 해답은 초창기 한국 기독교를 설파한 선교사들의 정신에서 찾았다. 선교사들이 개화기 조선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가 아니라 병원과 학교부터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치료해주고 조건 없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의 이러한 진심에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고, 감동받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게 된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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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안에는 글쓰기와 그림그리기에 대한 욕구가 더 크게 자리 잡았다. 15년 동안 선교사로 해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도 철학자, 인문학자들의 사상에 심취하고, 수많은 미술작품을 흠모하고 그것을 보기위해 찾아다녔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나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나의 열망을 감히 드러내지도 못했다. 19세에 시문학이라는 잡지를 통해 등단해 총 7권의 시집을 냈지만 한 번도 내 본명으로 출간하지 못했다. 금보성이라는 본명대신 금요비, 금로, 백제인, 기원석, 진종해 등의 필명으로 문학 활동을 했었다. 화가로서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선교사이면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 화가로 활동한다면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지탄을 받을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목회일을 하면서 신학과 내가 하고자하는 예술을 어떻게 접목시킬까 늘 고민했다. 해답은 초창기 한국 기독교를 설파한 선교사들의 정신에서 찾았다. 선교사들이 개화기 조선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가 아니라 병원과 학교부터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치료해주고 조건 없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의 이러한 진심에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고, 감동받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게 된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한국미술이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예술선교사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