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하고 굵은 선으로 소와 천진한 아이들을 즐겨 그린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서양화의 거목으로 손꼽힌다. 평남 평원의 부농에서 태어나 한문 사숙에서 고전을 배웠고 평양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오산학교에서 예일대와 파리에서 유학한 임용련에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 이후 일본 문화학원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공부해 격렬한 필치와 색감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초기의 민족의식이 담긴 향토적 그림부터 가족과의 이별을 소재로 한 은박지 그림으로 시대와 개인의 생각을 드러낸 이중섭은 자유로운 기질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순진무구한 사람이었다. 그의 문제의식과 재능은 이별의 고통과 그리움 등 철저하게 자신이 처한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개인적 고뇌를 지극히 진솔하고 생생하게 그려내며 성취를 이룬 화법은 한국미술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 현존하는 소묘와 회화작품, 후기의 은지화는 자유자재한 선묘와 서정적 표현을 보인 탁월한 작품이다. 이남덕으로도 불린 아내 마사코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제주에서의 짧은 생활을 담은 천진한 그림들과 편지에는 화가 이중섭의 고독과 외로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군화가와 미술교사를 지내기도 했고 김병기, 유영국, 구상, 박인환, 전혜린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였지만 이중섭은 아팠고 궁핍했다. 서른아홉의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아이들과 물고기와 게>, <길 떠나는 가족>, <사내와 아이들>, <소와 어린이>, <투계>, <황소>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1978년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제주도에 이중섭 거주지와 이중섭거리, 이중섭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