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은 팝아트를 대표하는 멀티 아티스트이다. 도발적인 주제와 혁신적인 제작기법, 파격적인 언행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사진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다. 그는 슬로바키아 출신 이민자가정에서 태어나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후 뉴욕으로 이주해 화가, 아방가르드 영화, 레코드 프로듀서, 작가 등 전방위 활동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으며 동시대 최고의 유명인이 됐다. 1952년 드로잉 15작품으로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1956년 뉴욕 MoMA에서의 그룹전 등을 통해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 등 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정치인이나 헐리우드 스타, 거대 도시 문명 속 기물들을 소재로 대중화된 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직관하도록 예술품의 대량생산에 앞섰다. 강렬한 색상과 명도의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100개의 캠벨 수프캔), (1달러 지폐 200장), (금빛 마릴린 먼로) 등 극명한 현대의 이미지를 포착한 작품들은 이후 다른 작가들의 오마주로도 유명하다. '공장(The Factory)'이라는 작업실에서 사람들을 고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팝피즘 : 앤디 워홀의 60년대)와 (앤디 워홀의 철학)을 쓰며 작가로도 활동해 1970년 비틀즈와 함께 라이프 지가 선정한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예술사조와 상관없이 풍요로운 현대 사회를 대변하는 명쾌한 예술가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모든 것은 스스로를 반복한다. 모든 것은 반복일 뿐인데, 사람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놀랍다.” 앱솔루트 보드카, 캠벨 수프, 브릴로 박스, 마릴린 먼로. 이것들은 세상에 단 한 점만 존재하는 명화가 아니다. 앤디 워홀은 일상에 흔하게 널린 것들을 자신만의 ‘팩토리’ 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며 예술의 대량 생산을 가동했다. 스스로를 ‘세상의 거울’이라 칭하며 거울에 비친 세상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작품 세계의 확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끝내 미술의 전통적인 가치와 ‘작품의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전복시켰다. ‘어떠한 것’ 도 예술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 것이다.